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 "글로벌 반도체社 모두 우리 고객"
지난달 인텔의 7나노미터(nm·10억분의 1m) 공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에 이 회사 주가는 20% 떨어졌다. 나노 단위 미세화 경쟁이 반도체업계의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나노시대의 ‘눈’ 역할을 하는 발명품이 있다.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의 뒤를 이어 탄생한 원자현미경이다. 세계 최초 원자현미경은 1980년대 캘빈 퀘이트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실에서 개발했다. 이때 개발에 참여한 사람이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사진)다. 그를 만나 향후 비전을 들어봤다. “매출 1조원대 회사를 만들겠다”고 했다.

원자현미경의 ‘원조’

현재 인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애플 등 글로벌 전자기업부터 미세 공정의 선두주자인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까지 모두 파크시스템스의 고객사다. 최근에는 ‘반도체 자립’을 추진 중인 중국 업체의 주문이 줄을 잇고 있다. 박 대표는 “자금력을 갖춘 중국 반도체 기업의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며 “이미 여러 대의 장비를 사간 A업체가 선금을 낼 테니 올해 11월까지 추가 납품이 가능하냐고 문의해 왔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공모가 9000원이던 회사 주가는 현재 5만원대 중반이다. 기관투자가들은 지난 7월 1일부터 8월 14일까지 2거래일을 제외하고 매일 이 회사 주식을 순매수했다. 박 대표는 “원자현미경은 KLA, 히타치하이텍 등 글로벌 계측장비 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전자현미경 시장을 대체해 나갈 전망”이라며 “매출 1조원 클럽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큰손’된 반도체 기업들

박 대표가 처음부터 한국에서 사업을 한 것은 아니다. 1988년 미국에서 원자현미경 기업 PSI를 창업했다. 회사를 운영한 지 약 10년. 회사가 안정적인 고지에 도달했을 때 그는 회사를 매각했다. “미국이 아니라 조국의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97년 파크시스템스를 설립했다. 나노 시대가 열리면서 콜라 업체부터 명품 시계 기업, 렌즈 제조사, 위조지폐 감별이 필요한 조폐공사까지 정밀 계측이 필요한 모든 기업이 파크시스템스의 고객사가 됐다. 2010년 파크시스템스의 산업용 원자현미경은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됐다.

2015년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 최대 반도체 연구소인 벨기에 IMEC에서 차세대 계측 장비 제조사로 글로벌 기업인 브루커를 제치고 파크시스템스를 선정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을 알린 계기였다. 박 대표는 “원자현미경은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게 ‘없던 눈’을 만들어주었다”고 말했다.

파크시스템스는 세계 최초로 자동 결함 검사 기능을 갖춘 웨이퍼 제조용 원자현미경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10시간 걸리던 일을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게 됐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높이 쌓아 올린 반도체의 3차원(3D) 형상도 원자현미경으로 계측할 수 있게 됐다. 박 대표는 “이전에는 나노 세계에서 눈을 감고 건물을 지었다면, 지금은 건물의 높이와 폭, 각도는 물론 표면이 매끈한지까지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며 “‘있으면 좋은 장비’에서 ‘없으면 안 될 장비’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원=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